실미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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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실미도(영화)는 1968년 북한의 김일성 암살을 목표로 창설된 684부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1971년 작전 중단 후 부대원들의 반란과 비극적인 결말을 그린다. 영화는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실미도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영화 내용의 사실 왜곡에 대한 비판과 논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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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영화) - [영화]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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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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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실미도 |
로마자 표기 | Silmido |
감독 | 강우석 |
제작 | Jonathan Kim, 이종선, 시네마 서비스 |
각본 | 김희재 |
출연 |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 정재영, 강성진, 강신일, 임원희, 이정헌, 엄태웅, 김강우 |
음악 | 조영욱, 한재권 |
촬영 | 김성복 |
편집 | 고임표 |
배급사 | 시네마 서비스, 동영 (일본) |
개봉일 | 2003년 12월 24일 (대한민국), 2004년 6월 5일 (일본) |
상영 시간 | 135분 |
제작 국가 | 대한민국 |
언어 | 한국어 |
제작비 | 850만 미국 달러 |
흥행 수입 | 6억 엔 (일본) |
대한민국 관객수 | 11,081,000명 (2013년 12월 기준) |
외부 링크 | |
공식 웹사이트 | 조선일보 기사 |
2. 영화의 배경 및 역사적 사건
영화는 1·21 사건을 계기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로 684 부대가 설립되어, 혹독한 훈련을 거쳐 전투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북 침투가 지연되다가 결국 실미도 사건을 일으키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영화 개봉 후, 684부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고, 대한민국 국방부는 2006년에 이 부대와 봉기에 대한 공식 보고서를 발표하여 처음으로 그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5] 보고서에 따르면, 684부대는 대한민국 공군 소속이었으며, 31명의 훈련병 중 7명이 훈련 중 사망, 20명이 봉기 과정에서 사망, 4명이 군사 재판 후 처형되었다.[6]
1971년 8월 23일 발생한 봉기의 원인은 불분명하다. 영화에서는 정부가 훈련병들의 기밀 누설을 우려해 처형을 결정하고, 이에 훈련병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 제작자 조나단 김은 이 부분의 역사가 불분명함을 인정한다.[6]
실미도 봉기에서 살아남은 6명의 경비병 중 한 명인 양동수는 부대의 임무가 북한 침투 및 김일성 암살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영화에서 31명의 훈련병들을 사형수로 묘사했지만, 대부분은 사소한 범죄자들이었다고 말했다. 양동수는 훈련병들이 북한에 갈 기회를 얻지 못하고 섬을 떠나지도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에 반란을 일으켰다고 진술했다.[6]
2010년 5월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정부에 684부대 21명의 유족에게 2.73억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은 훈련 위험 미고지, 가혹한 훈련으로 인한 인권 침해, 유족에게 사망 사실 미통보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인정했다.[5]
영화에서는 탈취한 버스 운전수가 총격전에서 부상당했지만, 실제로는 도망쳤다. 버스 안에서 '적기가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실제로는 없었다.
2. 1. 1·21 사태 (청와대 습격 미수 사건)
1·21 사태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 부대 소속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여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던 사건이다.[11] 이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박정희 정권은 김일성 암살 및 저택 폭파 계획을 세우고 684부대를 창설했다.[11]2. 2. 684부대 창설
1968년 1월, 북한 공작원에 의한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 김일성 암살 계획이 수립되었고, 이 계획을 실행할 극비 특수 부대 "684부대"가 실미도에서 창설되었다.[11]684부대는 박정희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KCIA 부장 김형욱의 지시에 따라 창설되었으며, 실제 관리 운영은 공군이 담당했다. 정식 부대명은 '''공군 2325전대 209파견대'''이며, "684부대"라는 명칭은 부대가 창설된 1968년 4월에서 유래되었다.
31명으로 편성된 부대원들은 인천 앞바다의 실미도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으나, 훈련 중 사고로 7명이 사망했다.[11] 영화에서는 중범죄자나 사형수가 특사와 맞바꿔 부대원으로 동원된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고액의 보수에 매료되어 응모한 '''일반인'''이 대다수였다.[10][12] 또한, 정부는 권유 당시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13]
2. 3. 실미도 사건
1968년 1·21 사태를 계기로 북한 김일성 암살을 위해 극비 특수 부대 "684 부대"가 실미도에서 결성되었다.[11] 정식 부대명은 '''공군 2325전대 209파견대'''이며, "684부대"라는 명칭은 부대가 창설된 1968년 4월에서 유래되었다. 부대 창설은 박정희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KCIA 부장(당시) 김형욱의 지시에 따른 것이며, 실제 관리 운영은 공군이 담당했다.31명으로 편성된 부대는 인천 앞바다의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았으나, 훈련 중 사고로 7명이 사망했다.[11] 남북 공동 성명 이후 남북 화해 (햇볕 정책)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암살 계획은 1971년에 철회되었지만, 기밀 유지를 위해 대원들은 실미도에 고립되었다. 목적을 잃은 훈련은 계속되었고, 대원들의 불만은 커져갔다.
1971년 8월 23일, 24명의 대원들은 반란을 일으켜 교육대원을 살상하고 실미도를 탈출했다.[11] 이들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열악한 처우 개선을 호소하고자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했지만, 대한민국 국군과의 총격전 끝에 수류탄으로 자폭했다. 20명이 사망하고, 생존자 4명은 군사 재판 후 1972년에 총살되었다.[11]
영화에서는 중범죄자나 사형수가 특사와 맞바꿔 부대원이 된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고액의 보수에 매료된 '''일반인'''이 대다수였다.[10][12] 또한 정부는 약속했던 보수를 지급할 생각이 없었다.[13]
3. 영화 줄거리
1968년 1월 21일, 124군 부대 소속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 미수 작전을 위해 남한에 침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대한민국 국군은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사형수와 무기징역수를 포함한 범죄자 등 사회 부적응자 31명으로 684부대를 창설한다.
684부대원들은 실미도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던 중, 두 명이 막사에서 탈출하여 여성 의사를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들은 곧 발각되어 처형될 것을 예상하고 자살을 시도,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죽였지만 자살하기 전에 체포된다. 체포된 군인은 다시 부대로 돌아와 묶인 채 다른 684부대원들이 경비병에게 구타당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격분한 684부대원 중 한 명이 경비병의 몽둥이를 빼앗아 묶인 군인을 죽인다.
국가안전기획부는 김일성 암살 계획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684부대원 전원을 살해하기로 결정한다. 부대 지휘관은 항의했지만,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684부대와 함께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의무와 명예 사이에서 갈등하다 정보를 684부대원에게 유출한다. 그날 밤 살해당할 것을 깨달은 부대는 반란을 계획한다.
이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지만, 보고서는 읽히지 않고 창고에 보관된다.
3. 1. 혹독한 훈련 과정
1968년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대한민국 국군은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사형수와 무기징역수를 포함한 범죄자 등 사회 부적응자 31명으로 684부대를 창설한다. 훈련병들은 실미도로 이송되어 훈련을 받는다. 이들에게 훈련은 자신을 구원하고 조국에 대한 충성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제시되었으며, 성공하면 자유와 새로운 삶을 얻게 된다는 목표를 가지고 훈련을 견뎌냈다.훈련병들은 몇 달에 걸쳐 낙인 찍기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극심한 훈련과 규칙적인 신체적 처벌을 견뎌냈다. 훈련병 중 한 명은 로프 코스에서 떨어져 사망하기도 했다.
3. 2. 작전 중단과 좌절
1971년,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김일성 암살 작전은 중단되었다. 684부대는 북한으로 파견될 예정이었으나, 출발 직후 소환되었다.[1] 정부가 북한과의 평화적 화해를 시도하면서 계획이 취소된 것이었다.[1] 이에 훈련병들은 실망과 좌절감에 휩싸여 실미도로 돌아왔다.[1]3. 3. 봉기와 진압
1971년 8월 23일, 684부대원들은 처형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을 인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경비병 대부분을 사살하고 실미도를 탈출, 대한민국 본토로 향했다.684부대원들은 자신들의 존재와 억울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민간 버스를 탈취하여 서울로 향하던 중, 라디오를 통해 자신들이 "무장 공산주의자"로 발표되고 비상사태가 선포된 것을 알게 되었다.
육군 검문소를 통과하며 총격전을 벌인 끝에, 동작구 유한양행 건물 앞에서 군경에 포위되었다. 격렬한 총격전에서 한국군은 버스 안의 민간인 안전을 무시했다.
결국 684부대원 대부분이 죽거나 다쳤고, 많은 한국 군인도 사망했다. 살아남은 부대원들은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민간인 인질을 풀어주고 수류탄으로 자폭했다.
4. 등장인물
(대한민국 공군 준위・684부대 훈련대대장)
(684부대 3반장)
(대한민국 공군 병)
(684부대 1반장)
(684부대 1반원)
(684부대 2반장)
(대한민국 공군 병)
(684부대 취사병)
(684부대 대원)
토리하타 히로토
이토 카즈아키
모로즈미 켄이치
호리베 류이치
오가와 타케오
사토 유시
사사키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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